가을 산행 안전 — 짧아진 해·일교차와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 대비

산에서 다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달은 한여름도 한겨울도 아니라 10월입니다. 소방청 출동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등산 사고는 9월 4,345건, 10월 5,026건으로 다른 달의 두 배 수준이고, 그 사고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각각 2,350명과 2,837명입니다.
날씨가 가장 좋은 계절에 사고가 가장 많다는 것은 이상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유는 단순합니다. 산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계절이고, 좋은 날씨가 방심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여름 산행은 소나기와 계곡물, 벌을 경계하고 올라갑니다. 가을 산행은 경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가을 산행 안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시계입니다
사고 원인을 보면 실족이 34%로 가장 많고, 조난이 27%입니다. 둘을 합치면 6할이 넘습니다. 여기에 지병 등 신체질환 20%, 추락 4%, 고립 3%가 뒤를 잇습니다.
실족과 조난은 성격이 다른 사고 같지만 하나의 원인을 공유합니다. 어두워진 뒤에 산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발밑이 안 보이면 헛디디고, 갈림길 표지가 안 보이면 길을 잃습니다.
서울 기준 일몰 시각이 어떻게 당겨지는지 보시면 감이 옵니다.
| 날짜 | 일몰 |
|---|---|
| 9월 6일 | 18:55 |
| 9월 23일 | 18:29 |
| 10월 10일 | 18:03 |
| 10월 31일 | 17:36 |
| 11월 20일 | 17:19 |
두 달 반 만에 한 시간 반 넘게 당겨집니다. 여름에 다니던 감각 그대로 오후 2시에 오르기 시작하면 하산 중에 해가 집니다. 게다가 산속은 능선 그늘 때문에 일몰 시각보다 30분에서 1시간 일찍 어두워집니다.
소방청이 권고하는 기준은 명확합니다. 산행은 아침 일찍 시작하고, 해가 지기 한두 시간 전에 마칩니다. 10월 말이라면 오후 3시 30분에는 내려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산 시각부터 정하고 코스를 고릅니다
순서를 뒤집는 것이 핵심입니다. 대개 코스를 먼저 고르고 시간이 되는지 계산하는데, 가을에는 반대로 잡아야 합니다.
1. 그날 일몰 시각을 확인합니다.
2. 거기서 두 시간을 뺀 시각을 하산 완료 시각으로 정합니다.
3. 그 시각에서 거꾸로 계산해 들머리 출발 시각을 정합니다.
4. 계산한 시간에 맞는 코스를 고릅니다.
여기에 여유를 더 둬야 합니다. 산행 소요 시간은 안내판 기준보다 길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사진을 찍고, 쉬고, 사람이 몰려 정체되면 표기 시간의 1.3배까지 늘어납니다. 단풍철 인기 코스는 병목 구간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합니다.
되돌아설 시각도 미리 정해 둡니다. 정상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사고를 부릅니다. 정한 시각에 정상에 못 닿았으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원칙입니다.

산 위는 생각보다 훨씬 춥습니다
가을 조난 사망 사례에서 가장 많은 사인이 저체온증입니다. 겨울이 아니라 가을입니다.
이유는 계산해 보면 나옵니다. 고도가 100m 높아질 때마다 기온은 대략 0.6도 내려갑니다. 여기에 바람이 더해집니다. 초속 1m의 바람은 체감온도를 약 1.6도 떨어뜨립니다.
| 조건 | 기온 |
|---|---|
| 산 아래(해발 0m) | 15도 |
| 해발 1,700m 지점 | 약 영하 2도 |
| 초속 5m 바람이 불면 | 체감 약 영하 10도 |
실제로 속초 기온이 15도일 때 해발 1,708m인 설악산 대청봉은 영하권이고, 바람까지 계산하면 체감 영하 10도 안팎이 됩니다. 시내에서 반팔로 나설 만한 날에 정상은 한겨울입니다.
땀에 젖은 옷은 여기서 치명적입니다. 오를 때 흘린 땀이 능선의 바람을 만나면 체온을 급격히 빼앗깁니다. 가을에 저체온증이 많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여름에는 젖어도 춥지 않고, 겨울에는 애초에 두껍게 입고 갑니다. 가을이 딱 사이에 낀 계절입니다.

옷은 세 겹으로 나눠 입습니다
한 벌을 두껍게 입는 것보다 얇게 나눠 입고 벗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 층 | 역할 | 주의 |
|---|---|---|
| 안쪽 | 땀 배출 | 면 티셔츠는 피합니다 |
| 중간 | 보온 | 플리스나 얇은 패딩 |
| 바깥 | 바람·비 차단 | 방풍 재킷 |
면은 젖으면 마르지 않습니다. 가을 산행에서 면 티셔츠 한 장으로 올라가는 것이 가장 흔하면서도 위험한 선택입니다. 기능성 소재로 바꾸는 것만으로 위험이 크게 줄어듭니다.
배낭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 여벌 상의 — 능선에 도착해 갈아입을 마른 옷
- 방풍 재킷 — 얇아도 됩니다. 바람만 막아도 체감이 달라집니다
- 장갑과 모자 — 체온은 손끝과 머리에서 먼저 빠져나갑니다
사고 원인 20%는 몸에서 옵니다
실족과 조난 다음으로 많은 것이 지병 등 신체질환 20%입니다. 다섯 건 중 한 건입니다. 넘어져서가 아니라 몸이 버티지 못해 구조되는 경우입니다.
가을에 이 비중이 올라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교차가 커지면 갑작스러운 기온 저하에 혈관이 수축합니다. 여기에 산에서의 신체 활동이 겹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가면서 심장 부담이 커집니다. 고도가 높아 산소 농도가 낮은 것도 부담을 더합니다.
새벽에 출발하는 산행이 특히 그렇습니다. 기온이 가장 낮은 시간에, 몸이 덜 풀린 상태로, 초반부터 경사를 오르는 조합입니다.
고혈압·당뇨·고지혈증이 있다면 아래를 지키는 편이 좋습니다.
- 초반 30분은 천천히 오릅니다. 몸이 데워지기 전에 속도를 내지 않습니다
- 들머리에서 겉옷을 바로 벗지 않습니다. 땀이 나기 시작한 뒤에 벗습니다
- 처방받은 약을 챙깁니다. 혈관확장제가 있다면 반드시 몸에 지닙니다
- 가슴 통증이나 호흡 곤란이 오면 즉시 중단하고 안정을 취합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판단이 가장 위험합니다
심혈관 질환이 있다면 가파른 산행 대신 평지 걷기나 자전거 쪽이 권고됩니다. 단풍은 낮은 둘레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낙엽 덮인 내리막이 실족의 절반입니다
실족은 대부분 내려올 때 일어납니다. 올라갈 때는 체중이 뒤에 실리지만 내려올 때는 앞으로 쏠리고, 다리는 이미 지쳐 있습니다.
가을에는 여기에 낙엽이 더해집니다. 마른 낙엽은 미끄럽고, 젖은 낙엽은 더 미끄럽습니다. 게다가 낙엽이 돌부리와 나무뿌리, 파인 곳을 덮어 버려 발을 딛기 전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바위에 낀 이끼가 아침 이슬에 젖어 있는 구간도 위험합니다.
대응은 장비와 보폭입니다.
| 항목 | 권장 |
|---|---|
| 신발 | 발목을 잡아 주는 등산화, 바닥 홈이 살아 있는 것 |
| 스틱 | 내리막에서 길게, 오르막에서 짧게 |
| 보폭 | 평소보다 좁게, 무릎을 살짝 굽힌 채 |
| 속도 | 내리막에서 뛰지 않기 |
바닥이 닳은 운동화는 젖은 낙엽 위에서 거의 제동이 되지 않습니다. 등산화 밑창의 홈이 얼마나 남았는지 출발 전에 한 번 뒤집어 보시기 바랍니다.

헤드랜턴은 챙기는 것이 아니라 늘 들어 있어야 합니다
당일 산행에 헤드랜턴을 넣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두워질 때까지 있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난 사고의 상당수가 어두워질 줄 몰랐던 사람들에게 일어납니다.
휴대폰 손전등으로 버티기는 어렵습니다. 배터리가 빠르게 닳고, 한 손이 묶여 균형을 잡지 못합니다. 밤에 손을 못 쓰는 상태로 내려오는 것이 실족의 지름길입니다.
배낭에서 빼지 말고 상시 넣어 두는 편이 낫습니다. 무게는 100g 안팎입니다.
함께 챙길 것도 몇 가지 있습니다.
- 보조 배터리 — 추울수록 배터리가 빨리 닳습니다. 지도와 구조 요청이 여기 달려 있습니다
- 행동식 — 초콜릿이나 사탕처럼 바로 열량이 되는 것. 저체온증 대응에도 쓰입니다
- 따뜻한 물 — 찬물보다 체온 유지에 낫습니다
길을 잃었을 때와 사고가 났을 때
가을 산에서 방향을 잃기 쉬운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낙엽입니다. 등산로 위에 낙엽이 두껍게 깔리면 길과 길 아닌 곳의 구분이 사라집니다. 눈에 익은 흙길이 사라지면서 엉뚱한 사면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낙엽 아래 젖은 바위나 나무뿌리가 숨는 것도 실족의 원인입니다.
길을 잃었다고 판단되면 원칙은 하나입니다. 아래로 내려가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 올라갑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길이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절벽이나 물길로 이어져 고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치를 알리는 수단은 미리 알아 두는 편이 좋습니다.
- 국가지점번호와 산악위치표지판 — 등산로 곳곳에 있습니다. 번호를 그대로 불러 주면 됩니다
- 119 신고 후 위치 전송 — 문자 링크로 좌표를 보낼 수 있습니다
- 배터리 절약 — 구조 요청 뒤에는 비행기 모드로 두고 정해진 시각에만 확인합니다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저체온증이 우려되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 마른 옷을 껴입고 열량을 섭취합니다.
저체온증은 본인이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도 알아 두셔야 합니다. 몸이 떨리다가 어느 순간 떨림이 멎는데, 이때가 나아진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진 상태입니다. 말이 어눌해지거나 판단이 흐려지고 걸음이 비틀리기 시작하면 이미 위험 구간입니다. 일행의 상태는 본인보다 옆 사람이 먼저 알아봅니다. 말수가 줄고 반응이 느려진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멈춰 세워 옷을 껴입히고 따뜻한 것을 먹입니다.
젖은 옷은 벗기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른 옷 위에 방풍 재킷을 덮고 바람만 막아도 체온 손실이 크게 줄어듭니다. 술은 몸이 더워지는 느낌만 줄 뿐 실제로는 체온을 더 빼앗으므로 산에서는 쓰지 않습니다.

일행이 있어도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혼자 가는 산행이 위험하다는 말은 맞습니다. 다치면 알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럿이 갔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원인은 대개 일행이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체력 차이가 나면 앞뒤 간격이 벌어지고, 갈림길에서 앞사람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앞선 사람은 뒷사람이 따라오는 줄 알고, 뒷사람은 앞사람을 찾아 다른 길로 들어섭니다. 조난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세 가지만 정해 두면 대부분 막힙니다.
- 가장 느린 사람에게 속도를 맞춥니다. 앞선 사람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뒤에 붙습니다
- 갈림길에서는 무조건 모입니다. 전원이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진행하지 않습니다
- 맨 뒤에 한 사람을 정해 둡니다. 그 사람보다 뒤에 남은 일행이 없도록 관리합니다
단풍 절정기 인기 코스는 사람이 몰려 정체가 생깁니다. 좁은 구간에서 앞지르려다 발을 헛디디는 사고가 이때 늘어납니다. 밀리면 밀리는 대로 가는 것이 계획한 하산 시각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입니다. 시간이 부족해졌다면 정상을 포기하는 쪽으로 조정합니다.
산행 계획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남기는 것도 잊기 쉽습니다. 어느 산, 어느 들머리, 어느 코스, 몇 시 하산 예정인지 문자 한 통이면 됩니다. 연락이 끊겼을 때 수색 범위가 산 전체냐 코스 하나냐로 갈립니다.
출발 전 5분 점검
- 일몰 시각 확인 — 그날 날짜로 확인합니다. 지난주와 다릅니다
- 하산 완료 시각 합의 — 일행 전원이 같은 시각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 여벌 옷과 방풍 재킷 — 배낭에 실제로 들어 있는지 손으로 확인합니다
- 헤드랜턴과 보조 배터리 — 켜지는지 눌러 봅니다
- 가는 산과 코스를 가족에게 남기기 — 연락이 끊겼을 때 수색 범위가 달라집니다
가을 산이 위험한 것은 산이 험해져서가 아닙니다. 해가 빨리 지고, 위로 갈수록 추워지고, 낙엽이 길을 덮기 때문입니다. 셋 다 미리 알고 나서면 대비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번 주말에 산에 가실 계획이라면 하산 시각부터 정해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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